사랑의 행위
오키나와 일본 일요모임 AH74(2020).3.1.
사랑.
이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사랑이 없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여러분이 죽게 될 때
그날은 다가오고 있지요?
누구에게나!
태어나는 순간, 아니 그 전부터 죽음은 예정되어 있습니다.
아기에게 생명을 줄 때
죽음도 주는 것이죠.
이렇게들 말하죠 “오 귀여운 아기!” 네, 그 아기는 언젠가는 죽게 됩니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외면하고 싶어하죠.
죽음은 삶의 일부입니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죽게 되겠죠.
아마도 여러분보다 내가 먼저겠죠.
그런데 여러분이 죽는 그날.
그때 여러분은 말합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산 것이지?”
“이 지구에서 50,60,70,80년을 산 이유는 뭘까?
“내가 무엇을 했지?”
“먹고 마시고”
“일하고”
“돈을 모으고”
그런 것들은 아무 의미도 없죠.
하지만 사랑은 어떤가요.
일생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랑을 주었나?
여러분이 죽는 날, 그것만이 중요합니다.
나는 충분한 사랑을 주었는가?
사랑을 주었는가?
감사해하면서...
알다시피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사랑은...
섹스가 이루어지는 모든 곳에 있다고.
아기를 갖는 것을 사랑의 열매라 합니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닙니다.
남자가 폭력을 사용하여
여성을 강간했을 때는
절대적으로 사랑이 아닙니다.
그런데 아기가 생겨납니다.
그러니 사랑이 아기를 만들기 위한 것은 아닙니다.
자, 이제 과학자를 생각해 봅시다.
실험실에서 생명을 창조하는 과학자들이 있죠.
DNA와
나노기술과
모든 과학을 사용합니다.
이것은 사랑입니다.
의식적으로 생명을 창조하기로
결정하는 것 입니다.
그것은 사랑입니다.
그것이 엘로힘이 우리에게 한 것입니다.
여성을 강간하여 아기가 태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은 똥입니다!
그러나 생명을 창조하는 것
엘로힘이 지구에서 했던 것처럼..
그것은 사랑으로 가득한 것이죠.
그들은 작은 박테리아만 만들 수도 있었죠.
바이러스 같은 것만 말이죠.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모습을 닮은
인간을 창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들과 동등한 지성과
똑같은 의식을 지닌 인간을.
더 중요한 사실은 그들처럼 초의식이 있다는 것이죠.
초의식이란 무엇이죠?
무한을 느끼는 능력?
충분하지 않습니다.
나 자신을 통해 무한이 드러나게 하는 능력입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이것이 사랑이죠!
나는 여기있는 사람들의 눈에서 엘로힘을 봅니다.
여러분이 거울을 볼 때 여러분은 엘로힘을 봅니다.
그래서 일요일 오전 11시의 텔레파시가 아주 중요한 것이죠.
그저 감사하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엘로힘”
“우리를 창조한”
“이 놀라운”
“사랑의 행위에 대해...”
강간은 사랑이 아닙니다.
과학이 사랑입니다.
과학은 최고의 사랑이 표현된 것이죠.
궁극적인.
최고의 표현입니다.
궁극의 행위
사랑의 행위입니다.
과학입니다.
과학은 생명을 창조 할 때 물론
가장 훌륭합니다.
오늘 이 아침에 우리가 함께 하는 건 과학 덕분이죠.
사랑의 행위 덕분입니다.
진정한 사랑.
지구에 의식적으로 생명을 창조하는 것입니다.
엘로힘 감사합니다.
살아 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잠에서 깨는 아침 처음 숨을 들이 쉴 때부터
“감사합니다. 엘로힘”
매번 숨쉴 때 마다 감사하세요.
심장박동이 뛸때 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여러분을 사랑해 주는, 주위의 사람들에게 감사하세요.
그들이 여러분을 사랑하지 않을지라도...
나의 사랑을 받는다고 나를 꼭 사랑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뭘 기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여러분의 사랑이 없어도 됩니다.
나는 여러분의 사랑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만약 내가 기대하는데 여러분이 나에게 사랑을 주지 않는다면
나는 굉장히 슬퍼하고 좌절하고
화가 나겠죠.
하지만 내가 다만 사랑을 주고 싶어 한다면
나는 그냥 행복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여러분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오히려 내가 모든 것을 주려 했기 때문입니다.
엘로힘의 지구 창조물
우리들이죠.
그들은 우리에게 사랑받기를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창조자이다. 우리를 사랑해야만 한다” 라고 할 수도 있었죠.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대사관을 세운다면”
“그러면 우리들은 올 것 입니다”
그것은 "해야만 한다“가 아닙니다.
그들은 나에게 “엘로힘을 맞이할 대사관을 세워야만 한다”고 결코 말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우리를 맞이 하고 싶다면”
“대사관을 세워주세요”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선택입니다.
그들은 먼지로부터 우리를
창조했습니다.
그들은 “우리는 너희의 창조자들이다”라고 할 수도 있었죠. 마치 나쁜 부모들이
“넌 내 아들이야. 내 말을 들어야 해!”라고 하듯이.
여러분 모두 알고 있죠. 특히 아시아에서 나쁜 부모들이 말하죠.
“이렇게 해야만 해, 저렇게 해야만 해”
엘로힘은
우리를 창조한 가장 높은 이들은
명령을 내릴 자격이 충분하죠.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말했죠. “부디”
“여러분이 우리를 사랑한다면”
“대사관을 세워주세요”
“우리들은 올 것입니다”
“오직 여러분이 우리를 맞이하고 싶을 때에만”
“그것은 여러분의 자유이고”
“여러분의 선택입니다”
지구에 대사관을 세우는 것은 의무가 아닙니다.
우리가 그것을 원할때
하는 선택입니다.
나는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대사관 건립을 원하나요?
그것은 여러분의 선택입니다! 아름답죠!
그것은 순수한 사랑입니다.
그리고 더 아름다운 건 무엇일까요??
나에게 많이들 묻습니다. “대사관이 세워지면 다음날 엘로힘이 오시나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대사관을 세우며 뭔가를 기대한다면
“대사관이 건설되니 다음날 꼭 와야 합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우리는 대사관을 짓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오기를 희망할 뿐이죠.
그리고 나는
예언자이자
메신저로서
밝혀 두지만, 그들이 반드시 오는 것은 아닙니다.
보장된 건 없습니다.
우리는 대사관을 짓고 희망을 갖는 것이죠.
그것이 사랑입니다.
이런 회원들이 있죠.
“나는 선하고 메시지에 있는 모든 것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마이트레야, 내가 영생을 얻는다고 약속해 줄 수 있나요?”
결코 안됩니다!
그건 거래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이것을 주었으니 그것을 주세요”가 아닌 거죠. 전혀요!
만약 어떤 대가를 바라고 선하게 행동한다면 그건 선한 것이라 볼 수 없습니다.
그져 선해 지기 위해 선행을 하세요.
어떤 대가도 바라지 말고
여러분의 사랑을 주세요.
대가로 사랑 받기를 기대하지 말고.
파트너가 있다면 상대와 먼저 시작해 보세요.
아주 많은 사람들이
사랑과 거래를 혼동합니다.
“내가 사랑을 줄게. 대신 너도 나에게 사랑을 줘야 해, 알았지?”
“너에게 꽃과 옷과 모든 것을 줄게. 대신 한 눈 팔지마, 응?”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기대라고는 단 한번도 생각해 본 적 없이요.
나는 사랑을 줍니다.
나를 사랑하나요?
아주 행복하군요.
나를 사랑하지 않나요?
그건 당신 사정이고요!
나를 사랑하든 아니든 나는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나의 모든 사랑을 줍니다.
나는 가끔 큰 도시를 걷는 걸 즐기는 데요.
아름다운 꽃을 삽니다.
보통은 장미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자기 여자 친구에게 장미를 주죠.
어머니라든지
선생님에게.
나도 장미를 삽니다.
그리고 거리로 나가
걷습니다. 그리고 말하죠.
“처음 보는 사람에게 장미를 줘야지”
예쁜 여성만이 아닙니다.
나이든 남성이나
나이든 여성일 수도 있겠죠.
누구든.
나는 장미를 줍니다.
사람들은...
“왜 나에게 꽃을 주죠?"라고 묻죠.
아주 재미있는 순간입니다.
이유는 없습니다.
“나에게 무엇을 팔려는 건가요?” 아닙니다!
“단지 당신에게 꽃을 주고 싶습니다”
일부는 아름답게 반응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 합니다.
사랑을 두려워 하는 것이죠!
이해할 수 없는 행성입니다!
엘로힘의 행성에서는
사람들이 주고
모두가 받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지구에서는
사람들이 주면
“이런...”
“내게 뭘 원하나요?”
이게 우리 행성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바꿔야 합니다.
여러분도 해보세요.
가끔 꽃이든 뭐든 사는 거죠.
아니면 자기집 정원에 가서
꽃 한송이를 따세요. 사고 싶지 않다면요.
아니면 이웃집 정원에서.
그리고 누군가에게 꽃을 줍니다.
가장 예쁜 여성을 고르지는 마세요.
눈을 가리고 말합니다. “첫 번째 사람이다. 좋아!”
누구라도 될 수 있겠죠.
경찰이 될 수 있겠네요.
"이걸 드릴께요“
그렇게 여러분은 지구를 변화시킵니다.
주고
또 주고
감사하면서.
“왜 나에게 꽃을 주는 거죠?”
“동시대에 나와 함께 살며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나에겐 소중합니다.”
“나는 당신의 삶이 소중합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감사하는 것이죠.
물론 엘로힘을 향한 것이 되겠지만
주위 이웃으로부터 시작하세요.
허공에다 “감사합니다 엘로힘”하는 것은 아주 쉽습니다. "감사합니다 엘로힘” 쉽죠...
여러분의 파트너에게 감사하세요.
곁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감사하세요. 왜냐하면 그들은 살아 있으니까요!
그들은 여기 존재합니다.
엘로힘은 살아있지만 여기에 없지요.
엘로힘이 여기 있다면 많은 이들이 조금 두려워할 것입니다.
그들에게 무언가, 자신의 사랑을 주는 것에 대해서요. 왜냐하면 “오...”
여러분을 보면 유대인 친구가 떠오릅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그렇게 합니다.
유대인이 된다는 것은
엘로힘을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유대인이 된다는 건 그런 것이죠.
한번은 내가 유대인과 말을 나누다 그가 말했습니다.
“아 그래요. 나는 메시아를 맞이하기를 원합니다”
공항이었고, 그는 내가 누구인지 몰랐습니다.
“나는 메시아를 맞이하기를 원합니다”
“나는 엘로힘을 맞이하기를 원합니다”
정말입니까?
정말입니까?
“물론이지요!”
확실한가요?
“물론입니다. 그것이 내 삶이니까요!”라고 그가 말했습니다.
“나의 선조들은 수세기동안 그것을 가르쳐 왔습니다”
좋아요.
그러면 만약 그가 당신 옆에 바로 지금 있다면?
“아! 나는 굉장히 행복할 것 입니다!”
나는 말했습니다. “나는 여기 있습니다”
“당신은 메시아가 아닙니다”
“어떻게 알 수 있지요?”
“상상해보세요. 만약 그게 나라면”
“당신은 어떻게 할 건가요?”
“음...”
“나는 메시아가 오기를 바라지만 내가 사는 동안은 아닙니다”
“그가 살아서 나와 함께 있다면 내 전부를 주어야 하기 때문이죠”
많은 유대인들이 엘로힘을 맞이하기 위하여
3번째 성전을 짓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자신들이 사는 동안은 아니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삶을 바꾸기를 원하지 않으니까요!
만약
만약 엘로힘이 오늘 이스라엘에 와서
“가서, 팔레스타인 땅을 팔레스타인에게 돌려줘라”한다면
아무도 들으려 하지 않을 것 입니다!
“엘로힘 와주세요. 그러나 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말고요”
그것이 바로 맹목적으로 믿는 자들의
위선입니다. 카톨릭 교황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는 재림할 것이다”
예수가 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자!”
“바티칸의 열쇠를 주십시오. 모든 것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줍시다”
“잠깐만요!”
“안돼요, 안돼요 안돼 안돼”
그들은 변화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살아있을 때 그 일이 일어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은 엘로힘을 맞이할 준비가 됐나요?
여러분이 죽기 전에!
지금!
어느날 내가 여러분에게 “내일”
“저곳으로 갑시다. 엘로힘이 올 것 입니다”라고 한다면 오겠습니까?
“여러분이 가진 모든 것을 파세요. 자신의 집을 파세요”
“직장을 그만두고 오세요. 엘로힘이 올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할까요?
어떤 사람들은 “네, 하지만...”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어쩌지?”
끔찍합니다.
감사하는 것
여러분 인생의 매 순간을 감사하세요.
여러분의 사랑을 주십시오.
어떤 것도 기대하지 말고.
그것이 사랑입니다. 데이비드 감사해요.
사랑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