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우리가 존재하도록 가르치지 않는다.
AH75(2021).7.4. 일본 오키나와 일요모임.
할 말은 ‘아무것도 없지만’
그 ‘없음’에 대해 말하려고 왔습니다.
‘없음’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없음’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없음'의 왕(Nothing king)이 되세요.
생각을 하지 않으면 가능합니다.
우리 두뇌에는 두 부분이 있습니다, 그렇죠?
초의식이 있고
그것이 우리를 무한과 연결시켜 줍니다.
모든 것들에 연결시켜 주죠.
무한히 큰 것들과
무한히 작은 것들까지.
그것이 초의식입니다.
그리고 ‘생각하는 두뇌’가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를 모든 것과 단절시킵니다. 모든 것들로부터!
우리를 단절시킵니다!
생각을 하면
연결은 끊어지게 됩니다.
사람들은 누군가와 마주치면 속으로 말하죠.
‘음, 이 사람 내게 해를 끼칠지 몰라’, 이런 게 생각이죠!
‘내가’
‘마스크를 써야 하나?’
생각입니다.
지구상 모든 문제는 ‘생각’ 때문에 일어 납니다.
전쟁의 원인이죠
나는 일본인이야
나는 한국인이야
나는 프랑스인이야
나는 독일인이야!
생각입니다.
사람은 아기로 태어납니다.
엄마의 자궁에서 나오며 작은 국기를 흔드는 아기를 본 적은 없을 것입니다.
한번도 없겠죠.
한번이라도 봤다면 말해주세요.
우리는 존재하기 위해서
태어난 것입니다.
아기들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느낄 뿐이죠.
그런데 서서히
부모와
학교와
교육이
가르칩니다.
생각하도록 가르칩니다.
학교에서 1등을 하라고 하죠.
공부하라고 합니다.
“최대한 많이 외워”
“머릿속에 똥을 집어 넣어”
“존재하는 것을 멈춰!”
나는 학생시절
창 밖 풍경에 넋을 잃곤 했습니다.
뭉게구름
날아다니는 새들
선생은 엄청 화를 냈습니다.
내가 수업을 경청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나는 그보다 구름과 새들이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자 그럼, 각성의 과정이란 어떤 것일까요?
“깨달음은 정신적 스승이 필요하다”라고 믿는 이들이 있죠.
“아! 나는 정신적 스승을 만나 그가 나에게 모든 것을 깨우쳐 줄꺼야!”
아닙니다.
정신적 스승, 진정한 정신적 스승은
배운 것을 버리고
잊으라고 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학교, 부모, 주변 모든 사람에 의해 훈련 받습니다.
기억하라, 기억하라 라고.
사람들은 전혀 쓸모 없는 정말 많은 것들을 학교에서 배웁니다.
학창시절에 아마 일본도 그렇겠죠.
역사 속 모든 왕들의 이름을 배웠죠.
아마 일본인은 모든 일본 왕들의 이름을 배우겠죠.
그것이 일상생활에 쓸모 있나요?
절대 아니죠!
무의미한 짓 입니다!
그런데 정작 존재하는 법은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항상 사람들은 내가 강의 준비를 할 거라 생각하는데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이 강의장으로 들어올 때
나는 무엇을 말할 지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정말입니다!
농담이 아닙니다.
단지 ‘존재’했을 뿐입니다.
일단의 젊은이들이 붓다 주위에 모인 일화처럼요.
한 사람이 물었죠. “당신은 누구입니까?”
“가르침을 주는 스승인가요?”
붓다가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왕인가요?”
“아닙니다”
“당신은”
“전능한 누군가가 우리를 가르치라고 보낸 사람인가요?”
“아닙니다”
“그럼 당신은 무엇인가요?”
붓다가 답했습니다. “나는 존재합니다”
‘나는 존재한다!’ 그것이 전부 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존재하는 법을 가르치려 이곳에 내가 있는 것이죠.
여러분 자신으로 존재하세요.
여러분은
여러분 모두는 역사 속의 붓다들입니다.
여러분 각자가
역사 속의 모든 예언자들입니다.
그 힘을 느끼세요.
여러분만의 유일무이한 부처로 존재하세요.
아무도 당신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아! “만약 내가 예수의 시대에 있었다면 예수를 만나”
“더 훌륭해 졌을 텐데”라고 하죠.
“만약 내가 붓다의 시대에 살았다면”
“그를 만나고 더 훌륭해 졌을 텐데!”
여러분은 완벽한 시간에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시간에.
여러분이 만나기를 꿈꾸던 붓다로 존재하세요.
여러분 각자가 붓다입니다.
존재하세요.
여러분이 될 수 있는 모든 것으로 존재하세요.
여러분은 무엇일까요?
‘무(없음)’입니다.
나는 ‘무’를 말해주려 여기 왔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무’가 되는 법을 가르치려 여기 있습니다.
자신이 '무'라는 것을 느낄 때
여러분은 모든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한입니다!
무한은 ‘없음’입니다.
과학자들이 현미경으로 무한히 작은 것을 탐구하면 할수록
그곳에서 ‘없음’을 보게 됩니다.
원시수준의 과학자들은
원자를 설명했죠 “세상은 원자, 전자, 중성자가 있는데...”
그것은 원시수준의 과학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주 작은 공이 주위를 도는 어떤 공을 떠올렸죠.
그러나 지금 인간은 무한히 작게 볼 수 있는 강력한 도구를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원자를 확대합니다.
이 작은 공을
확대하고 확대하면
그러면 그곳에는 ‘없음’이 나타납니다.
구름 같은 것이 있을 뿐이죠.
럭비공이나 축구공 같은 하나의 공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구름 같은 것이 있습니다.
하늘을 볼 때처럼 말이죠.
무한히 큰 쪽을 보면
별들이 보입니다.
우리는 어디에 있나요?
별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것이 우주탐험이 쓸모 없는 이유이죠.
은하들은 여기 있습니다.
우리는 은하 속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없음'입니다.
그러나
에너지가 있죠.
우리는
순수한 에너지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속한 수준의 에너지를 증가 시킵니다.
여러분이 느낄 때
생각이 아니라 초의식으로 느낄때
그것이 증가합니다.
‘생각함’으로써 원자를 보았고
원자폭탄을 만들었습니다.
생각은 대단합니다!
히로시마
대단한 생각이었죠.
후쿠시마
생각하기, 대단한 생각이었죠.
그런데 결국 사람들을 죽게 하는 것이었죠!
그러나 초의식은
모든 것을 느낍니다.
그것은 작은 풀 한 포기가 사람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을 압니다.
그것은 작은 동물들 모두가 사람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압니다.
그것은 모든 것과의 '하나 됨'을 느낍니다.
그것에 대한 또 다른 이름이 있죠.
사랑입니다.
사랑은
순수한 에너지입니다.
과학자들은 어떤 사랑의 분자나, 원자도 볼 수 없습니다.
분자들과 원자들은 사랑으로 존재합니다.
‘나는 존재한다’라고 말했던 붓다처럼
“무한, 당신은 누구입니까?”
무한이 대답합니다. “나는 존재한다”
그 내부에 모든 것을 품고 있지요.
왜냐하면
그것은 "무"이기 때문입니다.
자, 그럼 자기 내면의 이 ‘무’을 느껴 보세요.
그 순간, 전두엽의 생각하는 두뇌가
여러분을 현실과 단절시키는 것을 멈추고
모든 것, 모든 사람들과
함께
하나가 되게 합니다.
여러분이 나이고
나는 여러분입니다.
우리는 하나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생각한다면 “이상한 말이네”
“저 사람은 바보인가”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초의식을 사용한다면
우리는 하나 됨을 느낍니다.
여러분이 누군가의 눈동자 깊이 들여다볼 때
그곳에 커다란 에너지의 흐름이 있습니다.
우린 그것을 사랑이라 부릅니다.
그것은 무한입니다.
내가 여러분의 눈동자 깊이 바라 보면서
나는 무한을 봅니다.
내 눈동자 속을 보면서 여러분은 무한을 봅니다.
그것은 ‘아무것도 없음’인 동시에
모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붓다가 ‘무’라고 했던 것입니다.
모든 온갖 쓰레기를
자신의 두뇌와 몸과 존재에서 완전히 비울 때
갑자기 당신은
본래의 당신이 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입니다.
그것을 느껴보세요!
나를 따라해 보세요.
“나는 존재한다”
일본어로 뭐라 하죠?
‘와따시와(나는) 와따시(나다)’? 아주 멋지군요!
“나는 존재한다”
다시 해보세요, 느끼면서!
“나는 존재한다”
그리고 그것은
'무'입니다.
‘없다’는 것을 말하느라 긴 시간을 보내서 미안합니다.